■ 전시개요
• 전시명 : SPACE IN BETWEEN
• 전시기간 : 2016. 4. 27(수) ~ 5. 10(화)
• 전시오프닝 : 4월 28일(목) 5:00pm~
• 관람시간 : 월~토 11:00~19:00 | 공휴일 휴관
■ 전시 서문
나의 중간지대프로젝트*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개념을 내포하고 the space in between의 중간지대적 장소의 의미를 갖고 제작되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시작된 ‘이동’에 대한 이야기는 중간지대와 그 지대를 지나는 중간자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1.이동
우리는 끊임없이 이동을 한다. 나 역시 근래에 광주 서울 여수를 계속 이동했던 경험이 있다 . 당시 나는 서울에서 산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광주에서 산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수에 살지는 않지만 여수를 매주 가기 때문에 어떤 친숙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 집은 어디에’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친구 집을 찾기 위해 반복적으로 동일한 장소를 오고 가며 헤매는 화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과 장소에 익숙해진 관객은 그 장소에 거주민으로서 살지는 않지만 낯선 곳으로도 여길 수 없는 유람자적 시선을 갖게 된다.
2.중간지대 매주 점점 익숙해져 가는 오고 가는 여정의 길 위에서 나의 위치를 돌아 보게 되었다. 지금 현재 나는 물리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여러가지면에서 중간지대에 살고 있다. 이곳은 특정 서울도 아니고 광주도 아니며 물론 여수도 아니게 된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거나 그 모두에 속하거나 하는 확장된 개념의 중간지대이다. 그곳은 교량 위의 삶이기도 하다. 그러한 중간지대적 풍경은 개인의 상황이면서 크게는 모두의 일상이 된다.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에로스가 지자가 되기 위한 삶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로서 중간자이듯이 예술가도 이데아의 참된 상을 향한 중간자가 된다.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이동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이 중간지대를 살아가며 역시 그 곳의 거주민으로서 중간자가 될 수 있다. 즉, 예술이 이쪽과 저쪽의 삶을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하듯이 우리 삶 또한 다음을 위한 교량 위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3. 중간지대적 불안
공중그네에서 점프하여 A to B로 넘어 가는 과정중 공중에 떠있는 이동은 중간지대적 불안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 불안은 곧 어떤 힘과 광학적반동에 의해 미래를 앞당겨 디오니소스적 긍정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도착을 보증하는 이동은 불안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 특수한 지대를 중간지대라고 이름 짓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계속적으로 경험되는 독특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난 이런 공간을 반복되는 경로를 습관화 된 몸의 속도에 맡겨 경험하고 이동수단을 통해 체득된 감각을 통해 완성된 이동을 돕는 매개로써 몸을 맡긴다. 몸의 반동을 가져오는 광학적 미디어는 몸의 가속도 , 버스 그리고 KTX 가 되었다. 나는 오고 가는 차편의 창가 지나가는 풍경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그 교량 위를 지나가는 이들의 소리를 기록하고 있다. (발산마을 프로젝트에서는 이를 일정한 속도로 걸으며 기록하였다). 이 영상작업은 네오리얼리즘적 영화의 롱테이크기법 처럼 보이는데, 중간지로서의 가능태를 품은 사진으로 그리고 이동되는 화면의 원채널 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관객은 마치 서커스에서 공중그네 타기 중에 공중에서 회전하여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지대적 삶의 불안 그리고 동시에 도착이 보증된 여정 속에서 어떤 기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중간자
중간지대를 살아가는 자는 누구일까?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중간지대를 지나는 거주민을 찾는 것이다. 누구나 중간지대를 살아간다고 간주할 수 있지만, 교량 위에 서서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지각하는 자를 중간자로 부르고 싶었다. 그리고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자가 진정한 중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중간자는 즉 매개자가 되어 역할을 다하는 자로서 예술가로서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