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기간 : 2014.7.3(목)~7.22(화)
• 관람시간 : 월~토 11:00~19:00/ 공휴일은 휴관입니다
• 오프닝 : 7.3(목)_6~8pm_SPACE22
• 전시후원 : 미진프라자, Art -
■ 전시평론
자동차에 대한 기술(記述)
글 : 최연하(전시기획, 사진비평)
윤승준의 첫 번째 개인전, <자동기술>은 한국 사회에서 급속한 현대화를 겪어 낸 50
년대 생이 자동차를 통해 암시하고 있는 삶과 죽음에의 사진적 환기이자 흔적이다.
우리의 현대사를 고속도로와 자동차의 발전사라고 할 때, 현대사가 진행되는 기간 거의
내내 한반도에는 사람의 길보다 차를 위한 통행로가 사통팔달로 뻗어 나갔다. 당연히
차가 닿을 수 있는 곳이 빠르고 직선적일수록 사람의 마을도 현대화되는 특권을 누렸을
것이다. 자동차의 상징은 흔히 차를 소비하는 자의 이미지이자 기호로 작동한다. 현대
성의 극한에 와 있는 지금의 사진이미지처럼 현란하고 과도하게 굴러가는 차의 기호들
은 현대성의 불구 증상처럼 과잉과 권태로 산적되어 있다. 그 매혹이 도를 지나칠 지음,
작가는 중력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중동의 요르단을 여행하던 중 광활한 평원에 난데
없이 멈춰 있는 폐차와 조우하게 된다. 광막한 공간에서 만난 차의 마지막 모습은 그동
안의 삶의 질주, 빠른 속도를 한꺼번에 제어할 만큼의 강력한 브레이크이미지였을 것
이다. 자동차마니아이기도 한 작가의 눈에 사라지면서 남아있는 연속적이고도 불연속
적인 사진-삶-존재의 생경한 폐차이미지는 자동차에 대한 기술(記述)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해부도와 폐차도
자동차는 물건 중의 왕이고 첨단의 사물이다. 그것을 반복해 말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이 물건은 경제에서 담론에 이르기까지 수많
은 분야에서 다양한 행동방식으로 탁월하게 지배력을 행사한다. 교통
은 사회적 기능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
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주차, 통로, 적당한 도로행정의
최우선 순위가 주어졌다. (…)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그
들의 ‘거주’의 한 부분이자, 실로 그 자신의 본질의 한 단편이기까지
하다. (…) 부상자와 사망자, 그리고 유혈이 낭자한 도로와 함께 자동
차는 일상에 남겨진 모험의 한 잔재이고 감각적인 쾌감이며 일종의
놀이이다.
자동차에 대한 사회학자 르페브르의 명쾌하고 핵심적인 서술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의 꽉 짜인 시스템을 보여주는 적절한 비유로 60년대에 쓰여 졌지만 지금까지 유효하
게 적용된다. 작가에게 ‘물건 중의 왕이고 첨단의 사물’인 자동차는 사고로 전복될 위험
에서 작가를 구출해 주면서 비로소 자기의 작업으로 점유하게 된 반전의 대상이기도 하
다. 작가가 사진의 주제로 다시 전유(appropriation)한 폐차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사물을 작품 안으로 들여오듯 파편적이고 기계적인 요소들로 짜여 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좀체 볼 일이 없을 자동차의 하부 구조에서부터 폐차장에 이르는
낯설고 이상한 행렬이 이어진다. 완전히 써버려 더 이상 탈 수 없는 차들이 거대한 압착
기에 눌려 금속 추상이 되는가하면 낱낱의 부속들이 엉켜 복잡한 도로형세로, 해골무덤
으로 변한다. ‘결합, 조립’이라는 뜻을 가진 몽타주(montage)처럼 여러 부품들이 쌓이
거나, 모여서 기이한 조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해부도-고려장’시리
즈에서는 꽃 피는 작은 동산이나 언덕에 초(비)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자동차를 보여주
는데, 신선한 균열, 고밀도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발산하는 사진이다.
작품의 큰 제목이기도 한 ‘자동기술(記述)’은 현대 산업사회의 자동차에 대한 사진 보
고서를 의미한다. 또한 우리 시대의 문화가 매트릭스 속에서 자동적으로 자연화 되어
가는 것에 대한 경계로서의 ‘자동기술(技術)’이자, 초현실주의자들의 창작방편이기도
한 오토마티즘을 지시하기도 한다. 쓸모없다고 폐기된 사물에서 역사를 성찰한 크라카
우어와 벤야민이 이 사진들을 보았다면 분명 반가와 했을 것이다. 역사와 사진의 비슷
한 점이 역사 영역 안의 관습적인 측면들을 낯설게 해준다고 한 크라카우어의 입장에
서 ‘자동기술(記述)’은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모든 사실을 기록하는(마치 벤야민이 크
라카우어를 ‘어슴프레한 새벽의 넝마주이’라고 했듯이)역사가의 태도에 다름 아닐 것
이다.
작가가 전국의 폐차장을 찾아 수집하듯이 발견해 낸 이 오브제들은 너무나 친숙하기에
낯설다. 자동차를 떠나서는 어려운 현대적 삶의 측면에서 부적합하고 쓸모없어서, 곧 폐
기처분 될 것이라는 마크를 달고 있는 그 모습이 꼭 우리 삶의 살풍경과 비슷하기 때문
이다.
가타리에 따르면 살아 있는 사람처럼 기계도 탄생과 죽음의 유한성이 있다고 한다. 기
계가 움직이도록 설계된 개체 발생도와 인간이 사회화 되어가고 소멸에 이르는 전 과
정은 닮아 있다. 비약하자면 산 사람(기계)과 죽은 사람(기계)의 차이는 작동하는지,
고장 났는지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사진으로 그린 자동차의 해부도와 폐차도는 자동차의 기술부품을 해체하고 잘
게 분리된 조각들을 통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전체로서의 완결체가 아닌, 뒤틀리고 균열
이 생긴 폐차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의 기능과 구조, 형식적인 것들을 자동차의
모터, 차제, 여러 장비 및 부속들과 연결 지어보면 르페브르의 말처럼 ‘자동차는 그대로
사회에 대한 빈약하면서도 단순한 기능적 구조적 분석의 축소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의 생명이 끝나는 풍경들을 수집가처럼 모아내 탐조와 각광을 시도
하고 있는 <자동기술>은 그 속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친숙하다고 생각
하고 있는 현대 세계를 다소 다른 또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
록이자 초대장이다.
<자동기술>을 시작으로 조금씩 열리는 빈자리,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사적인 우연
들, 알고는 있지만 누구나 찍지는 않는 것들,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쓸려 보낸 쓰
레기 혹은 생명을 다한 것들을 작가는 지금처럼의 정열로 끝까지 밀고 나가길 바래본
다. 일탈의 힘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사진기술을 통제하면서 유희할 수 있는 금지와
위반이 함께 하는 기술이니 말이다.
■ 작가소개
윤승준(尹勝俊 Yoon, Seung-Jun)
‘시가건축’ 대표 및 대안공간 ‘SPACE22’의 관장
한양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6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진공부를 시작하여
그동안 다수의 그룹전시에 참여했다.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일원으로,
‘서울사진축제’(2012년)와 ‘국제골목컨퍼런스전’(2013)에 초대되었고, 2013년 5월
에는 성남훈 작가와 2인전으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다>를 개최했다. 첫 번째 개
인전인 <자동기술>(2014)을 시작으로 현대사회의 공간과 환경, 변모하는 땅의 풍경
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작업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