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입방체,
끝없는 감정의 ‘파장 잡기’
홍경한(미술평론가)
1.
작가 임정은의 작업은 마치 다른 세상 같은 장면을 소환한 채 세심하게 조율된 풍경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평면과 입체가 교차하는 그의 다양한 작품은 우리가 장소와 분위기를 보 는 방식에 대한 예술일 수 있는 반면, 넓게는 생활의 단면을 반영하면서 본질적인 미적 형태 와 기능으로 재 분해되는 맥락에 관한 모든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맥락에 대한 작가의 감정에 관한 것 이랄수 있다.
명확한 구조를 강조하면서, 기하학적인 형태를 갖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질서와 균형의 구성 아래 놓인 채 사각형과 입방체, 실제화 된 혹은 가상의 선을 동반한 빛과 그림자를 특징으로 한다. 그 중에서도 ‘빛’은 매우 중요한 조형 요소로써, 여러 물질(종이, 큐브, 유리 등 투명하고 반사적인)과 상호작용하며 정적이면서 활기차고 추상적이며 사실적인, 고요와 역동적인 스트로크(stroke)를 생성 시키는 요인이다.
그의 작품들은 빛에 의한 움직임을 탐구하면서, 운동적인 실질적 파장(아래에 자세히 쓰겠지 만)과 심리적이고도 감각적인 파장을 보여준다. 빛과 그림자의 활동성과 그로 인한 에너지는 기하학성을 포함한 독특한 조형을 형성하며 빛의 드러남과 그림자의 감춰짐의 탁월한 운용은 자신만의 문법으로 전치된 채 독자적인 감정 반응을 유도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맺히는 일루전(illusion), 하지만 명징한 실체감은 실상과 허상을 왕복하도록 하는 요소이며, 실재와 허구 의 경계를 머무는 축이다.
실제로 평범한 공간을 지각적인 실험으로 바꾸는 임정은의 빛과 공간에 대한 접근법은 예술과 일상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한다. 특별하지 않은 대상의 예술적 전용, 이는 대상과 화 자 사이의 단락을 흐리게 하고, 되레 빛과 공간, 시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경험을 만든다.
이러한 접근법은 관람객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을 재고하도록 하면서 임정은 예술의 특 징인 무한 가변적 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의 범위 확장에 기여한다.변화하는 빛에 의해 생기를 머금고 풍부하고 채도 높은 색상으로 채워진 그의 극적인 작품들 은 지각, 빛, 그리고 공간이 심오하고 경험적인 예술로서의 위치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종 건축 공간들과 함께하며, 전통적인 예술 형식을 초월한 채 관람객들이 그가 만든 환경에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은 지각하는 것과 비지각 영역에 대해 질문하도록 할뿐더러, 미묘하지만 변형적인, 흥미롭고도 유가치한 미적 체험을 제공한다.(이 역시 임정은 작업의 유의미 한 특징이다)
흥미롭고도 유가치한 미적 체험은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유동적 풍경, 공간 인식에 새로움을 덧대는 빛과 그림자에 의해 조작된 설치물들을 포함한다.(판화에서부터 설치에 이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장르 간 학제 간 문턱 없는 동시대미술 작가로서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이들 모두는 평면의 너비를 포박하는 작업들로,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유형적인 것보다 교감 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임정은의 작업은 작품 자체나 작가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예술의 동 시대적 특질이 아니라 한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바로 그 ‘장소’(미술관 작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에서 형성됨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예술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새로운 ‘정지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것에 무게가 있으며 관객과의 조우를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처럼 매우 우연적 혹은 우발적이다.
특히 몇몇 윈도우 설치 작업처럼 완전한 효과를 위해 특정한 환경 조건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 경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하루 중 시간, 날씨, 그리고 관람자의 위치와 같은 요소들이 충족될 경우 그로 인한 효과는 그 자체로 놀라움이다.(소마미술관에서 필자가 마주한 장면들은 실제 그러했다)
이처럼 임정은의 예술은 우리가 우리 주변의 세계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지를 재고하도록 주 문하며, 우리의 감각적 경험에 더 깊은 참여를 장려한다. 그의 빛과 공간의 혁신적인 개입은 현대 예술의 폭을 넓힐 뿐만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경험되고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 운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더구나 공간을 지각적 실험으로 전환하는 그의 능력은 정적인 대상 으로서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며, 그 초점을 일시적인 것에서 증험적인것으로 이동시킨다. 인식 행위 자체를 예술의 중심적인 요소로 만들면서, 높은 실재감과 인식을 조성 하기 때문이다.
2.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은 평면의 도형을 빛과 함께 입체처럼 보이게 하며 물질의 흔적은 색 그림자를 통해 착시로 나타낸다. 특히 형형색색의 그림자는 회색 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아쉬움이 없다. 이에 관람자들 또한 그의 작업을 보며 규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나조 차 그랬다)
그들은 도시인의 삶이 그러하듯 작품 앞 에서조차 비정형적 정형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 채 특 별한 목적지 없이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거침없이 움직인다. 그리곤 그의 작품 내부에 부유하는 생성과 소멸, 복잡함과 단순함, 격정과 고요를 마주하며 공감한다. 경계를 와해한 특유의 방식과 남다른 감수성으로 시각화한다는 점을 상기할수록 해석의 깊이 역시 명료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야말로 자신도 몰랐던 ‘감정’의 자각이다.
작가에 의한 수용 대상은 특정되지 않는다. 매체의 획일성도 적다. 부조, 입체, 설치,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제한은 없다. 오히려 공통적으로 상황과 감정에 따른 색의 적절한 변화가 하나의 화면에서 합일화 되고, 비의도성을 지닌 빛과 색의 관계가 산출하는 심리적 특질이 내 적인 상황과 맞물린 채 변화의 속성에 가속도를 붙이는 형국을 지닌다. 또한 (적어도 근작의 경우)일상의 일부에서 발췌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일례로 리퀴드 라이트(Liquid Light, 사진 기법)를 이용해 유리에 반영된 세계를 그려낸 <층 의 이미지>(1998)를 시작으로, 58개 유리창에 다변적 색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자연광에 의한 다각형들에서 포착된 새로운 상을 담은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art) 작업인 <사각형의 변주2020813, Memento Mori20210813>(2021)를 비롯해, 32개 유리창에 각인된 다채로운 색깔의 큐브들을 통해 전이되는 풍경의 감정을 묘사한 <사각형의 변주20230606, Carpe Diem20240515>(2023) 등은 특정한 상을 담았다고 하기보단 증발할 우연성의 기록이자 주체 적 삶의 중심에서 혹은 언저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가까우며, 잃어가고 잃기 싫은 인 생의 여정, 그 단락들을 소실점으로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작업은 한편으론 나(Ago)를 인용한 객체의 관점에서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이들과, 또는 인근의 무엇과 구별시켜 주는 특별한 종합적 기반의 작업이다. 단순히 익숙한 대상을 적시했다고 말하기보단 주변화되거나 종속되는 예술 식민주의와 가부장적 구조, 그들에게만 부여되는 권력과 특권, 위계를 거부하는 흔적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알게 모르게 우린 그의 작업에서 공감을 위한 어떤 심리적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 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계산 없이 펼쳐지는 작화적 의지를 확인하려 한다. 구체적으로 그 의지는 이미지로 나타날 수도 있고 하나의 색으로 치환될 수도 있다. 본질일 수 있는 빛과 그림자, 유리창에 비춰진 익명의 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모든 건 다시 예술이라는 ‘매개
(intermediation)’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귀결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비정형적 내재율, 작가의 심리 성에서 출발한 시-지각의 종점이다.
근작 중 일부는 복잡하나 또 다른 작업은 충만한 여백의 비워짐, 예술가의 감성이 다양한 매 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현상이 드러난다. 이를 문자로 기술하자면 ‘보다’를 넘어 ‘읽다’로 넘어가며, ‘인식’보단 ‘해석’(작가는 이를 ‘본다’라는 대신 ‘경험한다’로 표현한다)에 방점을 두어야 옳다. 작가 스스로 “다분히 다큐멘터리 적”이라고 말한 <유연함의 사각형 20240515, Ama Momentum20240604>(2024) 등이 대표적이다.
<유연함의 사각형 20240515, Ama Momentum20240604>은 ‘이야기’가 방점이다. 유리창에 비친 갤러리의 한 부분, 어떤 공간의 실내, 지하철 역사, 한옥이 있는 골목 풍경과 하늘과 전 등의 기묘한 중첩이 눈에 띄는 이들 작업은 (작가에 의하면)“자연광으로 발생한 빛을 통과시키는 ‘투영(透映)’과 빛을 반사하여 비추는 ‘반영(反映)’이 만들어 낸 우연한 상을 포착한 이미 지”이며, 환영적 공간을 유연함의 큐브에 담은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시각엔 그 내부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경계의 틈에서 자연스럽게 발화하는 형국이다. 시각 너머 산포 된 것들, 비움 으로서의 채움의 미학이다.
3.
동적이고 비표상적인 방식으로 배열되는 그의 여러 작품은 재현적이라기보단 기하학적 형태를 동반하는 순수한 예술적 느낌의 절대주의(Suprematism)에 가깝다. 그 안에서 어떤 일상의 장면은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며 이야기가 되고 건축이 된다. 너라는 객체가 나라는 존재와 혼합된 채 평면성을 탈출하는 공간적인 관계와 관점마저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접하는 근작들은 대부분 이러한 작가의 구성주의적 사고와 절대주의적 논리를 형성해 가는 과정 중에서 만나게 되는 예술의 가장 드라마틱한 표출이다. 2차원 매체 안에서 3차원 공간을 탐구하는, 공간과 원근법의 혁신적인 사용의 조합으로 특징지어진 그 결과물에 의해 관람객들은 인식 안에서 미지의 세계로 발을 옮기게 되며 빛에 의해 도포된 자국들로부터 끊임없는 유동 과정(Metamorphic Passage)의 일부를, 작가의 유동 감각(Sense of Passage)이 전이된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이것들은 작가가 제시한 일정한 규칙 아래 존재하고 그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성격 마냥 한 치의 틈도 없는 절대적 구속의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마치 첸니노 첸니니(Cenino cenini)가 언급한 것처럼 모든 작업의 가장 처음이며 비물질적 정체성(Identity)과 정신성을 구현하기 위한 내면적, 주관적 개념이 통제된 우연성(Controlled chance)과 맞닿아 조절되고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다만 작가는 이러한 작업들이 귀속되는 곳에 “능동적인 관람자 참여를 통해 명상의 시간과 일과의 피로를 푸는 시간”이 놓이길 희망한다고 했다. 모든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시야와 비시야, 시선과 현상의 이분적인 마주보기가 아니라 짧은 순간 유리를 통해 보이는 수많은 감정의 표출 혹은 내재 된 가능성의 스펙트럼 같은 끝없는 감정의 ‘파장 잡기’ 에의 도전”이라고 했다.
시각 예술에서 파장은 정서적 또는 상징적 의미를 포함한다.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연관성은 관람자가 예술작품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상징적 의미를 통한 작품해석과 서사의 층위를 목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단초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파장은 작업의 깊이와 움직임의 변화를 소환하며, 빛의 작은 눈금 하나, 그림자로 인한 다채로운 음영은 그러한 감정의 변화와 변화하는 감정에 의존한 채 2차원 표면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요소다.
결국 그의 예술에 있어 파장은 일정한 공간에서 예술 실천의 장소를 옹립시키며, 상호작용성이라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동일한 컨텍스트(context) 아래 존재한다. 나아가 파장은 시각적, 정서적, 상징적, 문화적, 역사적, 개인적, 기술적 차원을 포괄할 만큼 다면적이지만, 그것을 능숙하게 보여줌으로써 공감과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미적 원리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미적 원리를 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산란하는 빛과 색 .그림자의 넘침이 아쉬울 수 없는 장소에서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