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늘 곁에 머물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와 함께 지내는 나날들
희미해지거나 결코 잊혀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가끔은 흔들리고 있는 나의 영은 그의 혼과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사냥이 취미였던 그가 먼 길 떠나며 내 가슴에 아프게 박았던 대못들을 가지고 여기 숲속에서
그리고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이다.
숲은 구체적인 공간이나 그가 즐기던 오브제(그의 잔재)들을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그려서 새기거나
3D프린팅을 하기도하고 유리공예로 만들어서 희미해진 기억과 함께 구축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가며
나는 실제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를 느끼며 호흡한다.
여기에서의 유리와 아크릴이라는 매체는 이 작업에서 단지 재료가 아닌,
시간과 기억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쉽게 깨지고, 빛을 머금고, 그 너머가 비쳐 보이는 유리 조각들은,
그와 함께한 삶의 단편이며 동시에 사라진 것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매개체이다.
여기서 숲 또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호들이 탈 영토화되어 재조합되는 공간이다.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내적으로 향한 자아에 대한 사유가 깊어가며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나는
인간성이 본래 신성과 관계되어있다는 키르케고르의 인간관에 깊은 공감으로 절대자인 신에 대한 경외감이 깊어졌다.
나약한 인간이 절대자에 근접하고 싶은 소망으로 혹은 영적인 교감을 얻기 위해
30~40분을 한자리에서 계속 돌고 있는 수피춤을 추던 모습은 그와 여행 중에 각인된 이미지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에서 반가사유상을 감상하고 난 후의 깊은 여운,
명동성당의 순례길에 마주친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응시하던 그 날
그렇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인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내안의 깊은 울림들을 나의 몸을 사용하여 표현해 보았다.
손주들과 함께 한 성모자상도 가족이 함께 나눈 치유의 행위이자, 상처받은 기억을 다시 빛으로 덮는 제의이다.
흰색은 상실의 침묵이자, 회복의 약속이다.
때로는 아프게도 하였지만 시아버님과 사냥터에서의 식사, 장성한 자녀들을 출가시키던 일,
손주를 보았던 일 등 그와 함께한 지난날들은 모두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