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강남)
Beyond the Silver
2019-11-27-2019-12-26
구본창
 
SOT 22
 

■ 전시 개요

 

 스페이스22에서는 11월 27일부터 12월26일까지 구본창작가의 개인전 “ Beyond the Silver"를 개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30여 점의 작품들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초기작품들이다.

유학 기간 중의 몇몇 작품들 그리고 1985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방인으로써 느끼던 고립감과 작가로써 자립할 수 없었던 어려운 시기의 갈등, 또 민주화되기 이전의 답답한 사회상을 표출하는 한 방법으로써 평면적이고 전통적인 사진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 등장했던 해외의 staged photography의 영향과 회화를 좋아하던 그의 성향에 따라 시도하게 된  일종의 몸짓이었다. 시간의 축적에 관심, 그리고 그  흔적 속에서 이야기를 찾는 그의 작업과 일련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의 작업은 결국 인화지에 인위적인 시간의 흔적을 만들려고 했던 작업인 셈이다.   
  
   ■ Beyond the Silver
                  
           감각으로 질풍과 노도를 달래는 구본창의  사진                                  
           
예술에 있어서 사진은 매우 역설적인 매체다. 그 지표적인 명증성을 그대로 재현할 역량 때문에 도리어 그 사진이 재현할 수 없는 비가시적이고 비실재적이기도 한 그 무엇을 탐구하는 매체로 동시대 예술가들의 각광을 받아왔다. 단순히 광학적인 도구로서 인간 지각의 연장을 위한 미디엄으로서 뿐 만 아니라, 사진은 그 명증한 재현 그 자체를 통해 명증해 질 수 없는 그 반대의 세계를 부재의 방식으로 형상화 시키면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확보해 왔다. 그래서 사진은 허구를 실체로 비추는 상상적 거울로 제시되면서 실재를 실재이게끔 하는 비실재적 근거에 미학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용한 통로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진을 하나의 미디움으로 전유하는 방식은 사진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진적 전통에서는 매우 전위적이지만 마이너 한 편이다. 사진이라는 매체 그 자체 속에서 매체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주류고 정통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사진계에서 구본창의 예술적 궤적을 추적해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초기의 작품 경향은 사진의 바깥에서 사진의 한계를 두드리며 사진에 대한 매체적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생각의 바다(1990), 굿바이 파라다이스(Good-bye Paradise, 1993), 태초에(In The Beginning, 1995) 등의 전시가 당시 사진계에서 파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렇게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노력들이 화이트(White 2000), 가면(Masks 2003), 시대의 초상(Portraits of Time 2005), 백자(2006) 등의 성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결과론으로 미루어 보면 또 다른 파격을 이룬다. 사진 매체의 안과 밖에서 시도했던 격렬한 노력들이 사진 속으로 감각적으로 수렴되면서 가장 사진적인 사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사진사의 전개 과정을 전도시키면서 구본창은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몽롱하고 둘러싸인 듯이 느껴지거나, 해 질 무렵의 빛에 끼어든 아슴푸레한 그늘 같은 사진의 배경 색조가 사진 속의 대상의 특징이나 감정처럼 느껴져 그 사진들과 내가 어떤 감정적 관계속에 있는 듯 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사진가와 그 사진적 대상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쏟아져 감각속으로 빨려 가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눈에는 제대로 띄지도 않는 사소하고 하찮은 먼지 같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되는 사물이나 그것들의 흔적 같은 주변적이고 비루한 사물들이 더없이 애틋하면서 화사한 모습으로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기본적으로 구본창이 그런 대상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그는 사물을 깊게 오래 본다. 긴 호흡으로 집요하게 본다. 그 과정에서 더없이 사소해서 덧없이 사라지는 사물의 허무한 순간을 사진의 대상으로 포착하기도 하지만, 너무 빤해서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도 대상으로 품어서 애틋하고 새롭게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인 동시에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사물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대상과의 긴장과 교감을 하나의 만남의 프레임으로 구성하며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사진으로 재현되는 대상은 대상 그 자체보다 더 멋지고 우아하며 훌륭해서 지표(index)로서의 레퍼런스를 벗어나서 찍힌 대상보다도 더 대상스럽게 보여서, 완벽한 시뮬라크르가 된다. 이는 이미지가 실재로부터 독립하여 가상세계에 개입하는 어떤 형식이 되는 듯이 보이기도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스스로가 가상현실에 참여하는 이미지처럼 느껴지며, 이 가상현실이 마치 객관적인 실제 세계처럼 여겨진다. 정보와 상징 자체가 우리의 현실이라는 탈산업화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예술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주목받지 못하고 홀로 있는 대상”이나 “버려지고 덧없는 것들”을 카메라로 집요하게 상상적으로 되살려왔다. 경험을 포착해 두려는 심리를 가장 이상적으로 이루어 주는 심리적 도구인 카메라를 통해 성실하고 꾸준하게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장비나 도구를 사용하는 테크닉은 늘어나 원숙해지고, 사라져가는 일상의 한 자락을 안타깝고 서운하게 여기는 감정도 반복 누적되면서 더 생생해 진다. 사진적 대상에 다가가기 위해 대상에 대해 한없는 망설임과 그 포착의 순간을 결정하는 자기 결단으로 첩첩이 쌓아 올린 느낌 감각의 연쇄를 사진적 동작을 통해 카메라로 새긴다. 순간을 포착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고 시간의 궤적이 오래오래 몸에 익으면서 카메라의 기능이 몸의 일부처럼 무의식에 가깝게 습득된다. 대상에 몰입하게 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을 느끼는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지금 작업하고 있는 대상처럼 느끼게 된다. 물아일체적인 관조적 세계 속에서 사진적 대상은 주체가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경로와 흔적을 드러내며 대상의 미적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이입과 몰입은 역설적으로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성립한다. 대상을 대상으로 보기 위해서는 대상을 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대상화하면서 성립한다. 즉 자기 자신을 대상화를 통해 대상과 그 대상을 보고 있는 자신과의 관계성을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관조란 대상을 보는 하나의 방법이나 태도인 것이다. 구본창은 특정 대상과 사물에 대해 애착하는 자신과, 새로 발견한 사진적 대상의 관계를 일상의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현상하는 의지의 직접성과 절대적인 거리를 취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스스로가 대상화 되어 버린 주체는 주체로부터 탈맥락화 되면서 새로운 추상적 공간이 열리고, 사진적 대상은 주체로부터 무관심해지면서 예술가 구본창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공간을 초월하여 인과의 사슬을 끊어내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진으로 삶의 의미를 채워간다. 이러한 내면적 노력의 결과로 생긴 쇼펜하우어적인 관조야말로 내가 “감각적 관조의 세계”라고 부를 구본창 사진의 바탕을 이루며, 구본창의 사진을 구본창 스럽게 만드는 바탕인 것이다.

주체와 대상을 주체의 입장 내에서 다루는 방식은 구본창 작업에서 매우 일관적이고 지속적이다. 독일에서 귀국 후에 작업했던 초기 사진들은 지금의 사진들과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다른 듯이 보인다. 도저히 같은 작가의 작품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사진이지만 사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진의 한계를 넘어가 보려는 격렬한 욕망과 의지가 징후적으로 표출되었었다. 카메라를 사용해서 생성된 결과물 자체를 오브제로 사용하여 인화된 사진을 실로 꿔매어 거대한 사진 꼴라쥬를 제작하기도 했고, 셀카로 자기의 얼굴과 신체를 극단적으로 표현해 보기도 하고, 심지어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사진적으로 오브제를 재현하는 포토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적 표현 방식에 대한 실험을 했다. 이는 사진적 이미지의 물질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긴 오후의 미행(1988)이나 생각의 바다(1990), 굿바이 파라다이스(Good-bye Paradise, 1993), 태초에(In The Beginning, 1995) 등은 이 시기의 결실이다.

이 무렵의 사진은 주체의 표현에 대한 욕망과 의지가 대상을 압도하고, 과잉으로 넘치는 자의식은 낭만화 되어 작가 자신과 의식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수단화 되고 있다. 주체의 욕망에 포획된 사진적 대상은 매우 폐쇄적이고 불안정하며 불안에 대한 기표처럼 사진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피사체가 왜 사진적으로 표현되고 재현되어야 하는지 명확한 인식이 결여된 채, 사진 자체를 물질적 오브제로 보면서 물리적으로나 기법적으로 처리하면서 후반 작업을 통해 작품이 완성되지만, 사진적으로는 연소되지 못한 미완의 그 무엇이 될 뿐이었다. 이렇게 구본창의 초기 사진들은 사진적이라기 보다는 회화적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카메라를 마치 붓이나 연필처럼 도구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피사체는 밑그림을 위한 하나의 구실이 되고 인화나 후반 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구성했던 것처럼 보였다. 대상에 대한 감각적 반응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표현하려고 하는 대상에 부합하는 오브제를 우선적 대상으로 골랐던 게 아닌가 싶다.

 90년 대 중반에 숨(1995), 흐름(1999), 화이트(White 2000) 등의 시리즈를 통해서 점차 사진적 대상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더 이상 대상을 주체의 표현에 대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대상에 주체를 품도록 하여, 대상에 주체를 순응시킬 뿐 만 아니라 주체 자체마저 대상화 시키면서 주체와 대상과의 감각적 거리를 확보하는 태도를 확정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사용하는 방법은 동일하지만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는 데 있다. 즉 초기 사진에서는 대상을 주체로 끌어당기려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이후에는 주체가 냉큼 대상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자의식 바깥으로 나가 감각적으로 대상화 되면서 대상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대상의 영역도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렌즈에 들어오는 시야도 넓어지고 주체의 내면에 감각이 촘촘하게 스며들면서 사진은 물질화된 감각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구본창의 초기 사진은 넘쳐나는 자의식이 모든 사진적 대상을 압도하여 사진이라는 매체의 바깥까지 달려가는 “질풍노도(Sturm und Drang)”라고 한다면, 이후의 사진은 임당수에서 용왕의 제물이 되는 심청이처럼 자신을 질풍노도 속으로 던져 버리면서 얻은 관조의 바다 일터다. 주체의 격렬한 욕망과 의지는 대상과 엄격한 거리 속에서 통제되어, 감각적 관조 속에서 감각으로 응축 되어 있어서, 초기 사진은 관조라는 형식에 가려있는 억제되고 있는 주체의 억압적 회기에 대한 오마주가 된다. 마치 독일 낭만주의를 열었던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Lehrjahre)를 통해서 위대한 작가로서 자기 형성 과정을 성장 소설(Bildungsroman)의 형태로 보여준 것처럼 구본창의 이번 스페이스 22에서 열리는 구본창의 초기 사진 전시 “은염 사진의 한계 너머(Beyond the Silver)”는 구본창의 예술가적 성장 궤적에 대한 사진적 빌둥스로망이 될 것이다.

(김웅기, 옵시스 아트 대표,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