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시성-제주
2018.07.03 ~ 2018.07.20
이수철

■ 작가 글

                     

 

                                                           非同時性 - 濟州

 

 오래 전 이야기지만 일본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서울생활이 적응 되지 않아 ‘제주로 내려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직 그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는 제주를 품고 살고 있다. 몇 개월 동안의 새로운 작품의 구상이 끝나갈 무렵, 나는 제주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제주의 사진 중 자주 등장하는 명소나 풍경은 가능한 배제하고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관광지를 아주 안 찍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작가로서의 감각적인 면과 감성이 남아 있다면, 나 자신을 믿고 내 눈에 들어오는 제주를 찍기로 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촬영 소재로 자주등장하지 않는 동네 골목과, 사람들은 눈길을 잘 주지 않지만 내게는 재미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또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익숙함이 지루하지 않는 장면들도 촬영장소로 활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한 곳의 촬영장소가 결정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시간의 틈을 두고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면 그 사진 안에는 제주의 사계절의 시간을 모두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번 작업은 디지털 mechanism을 이용해서 아날로그에서의 연속되는 시간의 이미지와 대비해 중간 값을 취하지 않는다는 디지털의 속성을 이용, 이미지화 하였다. 
 사진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보았을 Michael Wesley와 Sugimoto Hiroshi의 작품들은, 순수한 시간의 개념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은 사실성을 갖고 있는 매체다. 그러므로 시간의 사실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여 줄 수 있는 장르가 사진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위의 두 작가는 사진이 가진 시간의 영역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완벽한 사진을 위해 공간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들의 작품을 보면 잘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작업은 시간을 연속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계절마다 그리고 기후에 따라 시간을 선택해서 같은 장소에서 촬영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비동시성 - 제주>이다. 
비동시성은 같은 시공간에 과거와 현재가 비이성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번 작업이 사회적 관념과 상식이 바뀔 정도의 시간의 틈을 두고 촬영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계절의 틈과 시간의 틈을 두어 사계절의 낮과 밤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어떤 시간대와 계절에 촬영했는가 하는 시간의 문제와,  한 장의 사진으로 계절과 시간을 디지털의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만들어진 이미지 즉, 계절과 시간이 만들고 간 궤적, 비선형적 도형, 그리고 사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하나를 살짝 보여줌으로써 ‘이것은 사진이다’라는 메시지도 함께 던지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외형적으로만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1930년대 독일 사회를 규정하면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예를 들어 한 이야기로, 가치와 관념이 다른 시대의 인물과 현재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모순된 공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은 회화와 달리 기록된 그 시점의 이미지가 주로 회자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진은 찍히는 순간 그 시점의 한 장면은 영원히 박제되어 그 순간만의 시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번 작업이 시대를 관통하는 긴 시간의 의미는 담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장소에서의 다양한 시간대와 계절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담으려 노력했다.
여러 시간대에 걸쳐 촬영된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시점의 이미지를 발견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디지털사진에서의 시간적 개념과 사진적 장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신중선_소설가

 이수철은 사진을 ‘만든다’. 덧칠하거나(아키텍처 포토그라피) 합성을 하거나(환상의 에피파니) 포개서(비동시성-제주) ‘만든다’. 사진이란 사실적인 매체라고만 알고 있던 내게 이는 낯선 세계처럼 보였다.

당신은 어느 시간대에 속해 있었을까
 이수철은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작업을 ‘비동시성-제주’라고 명명했다. 작가가 말하는 비동시성이란 ‘같은 시공간에 과거와 현재가 비이성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동시성-제주에는 하나의 사진 안에 사계절이 모두 들어있다. 특정 장소를 계절의 틈과 시간의 틈을 두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에 걸쳐 찍은 후 포갰다. 당연한 일이지만 상당히 유니크한 사진이 만들어졌다.
 이수철의 사진을 감상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다시 말해 겹침 현상 그 안쪽까지 들여다봐야하기 때문이다. 상상너머의 것을 보고 안 보고는 오로지 감상자의 몫이다. 단순히 일별하고 지나간다면 아름다운 사진을 음미한다는 것 외에 더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릴 적 했던 보물찾기 놀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유심하게 자세히 감상해볼 일이다. 작가는 알고 싶어 한다. 예측이 용이하지 않은 이들 사진 이미지를 보면서 관객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에 대해. 이는 사진을 만든 작가의 입장에서 궁금히 여기는 지점인 동시에 두근대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반응이기도 하다.
 이수철이 촬영한 사계는 수없이 많은 겹침 현상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예외 없이 사진의 어느 한쪽에는 선명한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 중첩되어 나타난 사진과 대비를 이루면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 생생하고 분명한 이미지는 모두 네모꼴 안에 들어있다.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 안의 이미지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사진의 모습이다. 이 부분은 작가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하나를 살짝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방법인 것 같은데 작가야 뭐라 하건 나는 이것을 현시점이라 인식하겠다. 명료하고 또렷한 바로 지금의 시간, 현재 말이다. 그렇다면 초점이 안 맞는 것처럼 보이는 중첩된 부분은 지나가버린 시간과 기억일 터인데, 거기에는 무수히 스쳐지나갔을 바람과 비와 먼지가 그리고 그 주변을 걸었거나 뛰었거나 혹은 울면서 한숨지으며 지나갔을 사람들의 흔적 같은 것도 오버랩 되어있을 것이다. 그 장소에 잠시잠깐이라도 머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보면서 한번 상상해 보라. 저 겹쳐 보이는 사진에서 당신은 과연 어디쯤에 속해 있었을까.
 
계절과 시간이 만들고 간 궤적
 이수철이 2008년 무렵 작업했던 ‘아키텍처 포토그라피(architecture photography)’와 2011년의 ‘화몽중경’, 2016년 ‘day dream’ 그리고 이번에 내놓은 ‘비동시성-제주’에는 일관된 이미지의 표현방식이 있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시간’이다.
 이수철은 과거 어느 한때 오래 되어 아무도 쳐다보지 않거나 철거당하고 있는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특히 철근이나 철골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낡은 건축물들이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작가가 결정한 위로의 방식은 이 아무 쓸모없이 버려진 건축물을 꾸며주자는 것이었다. 찍어놓은 사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마치 염장이가 주검의 얼굴을 화장하듯이 사진을 치장했다. 작가의 손을 거치자 더럽거나 낡았거나 보기 싫었던 건축물이 고운 녹색이거나 신비로운 보라색 혹은 아름다운 청색으로 변모했다. 리터칭을 통한 미화작업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작가가 사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작한 결과물이었다. 
 아키텍처 포토그라피가 의도적으로 조작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그 다음 작업이었던 화몽중경은 조작되어지지 않는 꿈 즉 작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붙잡을 수 없지만 붙잡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애썼으며 이를 위해 필드용 4X5카메라를 사용했다. 화몽중경 시리즈는 초현실적 꿈의 세계를 앵글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비동시성-제주에서도 그 이전의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수철은 시간을 다뤄보고 싶었던 것인데,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계절과 시간이 만들고 간 ‘궤적’을 표현했다는 점. 그러자니 과거 작업들에 비해 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공력도 많이 들어갔다.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일 년 세월이었을 것이다. 음식으로 치자면 기다림과 숙성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짐작컨대 한 계절에만도 서울과 제주 사이를 수차례 오갔을 테니 그 수고야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품을 들인 만큼 좋은 사진이 나왔으니 보람 또한 클 것이라 미뤄 짐작되지만,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법이니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을 붙들 수만 있다면
 이수철의 사진을 처음 본 것은 몇 해 전 홍대 앞 ‘하루키’에서였다. 하루키는 당시 작가가 운영하던 일본식 선술집 상호다. 어느 야심한 밤 하루키에 앉아서 정말이지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당시 내가 본 사진은 월간 현대문학 표지화를 통해서였으며 화몽중경 시리즈 가운데 하나였다. 다분히 몽환적이었다. 꿈, 환상, 몽상 같은 이미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새롭고 신선했다. 그 사진에서 나는 설핏 이야기를 읽은 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이름을 빌려다 썼다고 했을 때 대뜸 알아차리긴 했다. 이 작가의 사진에는 서사가 들어있겠구나! 꿈속의 풍경을 물감으로 그린 것 같은, 말 그대로 ‘화몽중경’이었다. 사진이 사진으로만 여겨지지 않았고 아주 잠깐 꿈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알코올이 빚어낸 판타지였을지도.
 비동시성-제주에서 나는 특히나 작품 ‘서귀포-1’이 썩 마음에 든다. 아, ‘서귀포-2’도 함께 포함시키고 싶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 모두가 훌륭하게 여겨지지만 특정사진을 가려서 집어내는 이유는 겹침 현상이 각별히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 내 정서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분간되지 않아 어리어리하게 보이는 사진들은 몽중인 듯 현실인 듯 신비롭게 여겨지면서 그만 내 마음에 안착하고 말았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미지 안쪽에 얼마나 많은 기억과 시간의 조각들이 겹쳐 들어있을지 궁금한 나머지 이 비선형적 도형을 한 겹 한 겹 들춰서 들여다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면 지나간 시간을 찾아낼 수 있을까?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90년대 홍콩영화 뉴웨이브를 이끈 왕가위의 영화 <동사서독>은 시간의 로맨스라 불리는 영화다. 갖지 못하더라고 잊지는 말자고 말하는 이 영화에 의하면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것은 기억력 때문이라는데 여기, 마시면 모든 걸 잊는다는 술 취생몽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중 하나인 동사 황약사는 기억을 잊고 싶어 취생몽사를 마시지만 또 다른 주인공인 서독 구양봉은 마시지 않는다. 나는, 아니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일까.
 이수철은 시간을 작품 안에 붙들어두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대로 사라지지는 것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 작가 프로필


오사카예술대학교(OSAKA UNIVERSITY OF ART) 사진학과 졸업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사진학과-순수/이미지사이언스 전공)졸업

Solo Exhibition
99년 memories -이후갤러리-
06년 빛으로 그리는 기억의 풍경展 -나우갤러리-
08년 幻想의 Epiphany -갤러리온-
08년 Architectural Photograhy- 브레송갤러리-
11년 화몽중경 –그림손갤러리-
11년 갤러리나비 기획초대전“부활2012” -나비갤러리-
16년 브레송 갤러리 오마이 뉴스 공동기획 사진인을 찾아서 이수철 개인전
       “Day dream” -브레송갤러리-

Group Exhibition
01년 SAKA-NO MACHI ART in yatsuo 2001 –toyama yatsuo(일본)-
04년 한-일 사진교류전 방주의 사진14인 展
     -일본문화원 실크갤러리-
05년 광복 60주년기념 한국사진의 과거와 현재전 -광화문갤러리-
08년 2008 WAKE UP 한국사진의 새로운 탐색 -룩스갤러리-
08년 뿌리 깊은 사진전 -이룸갤러리-
09년 상상외 풍경 이수철-조미영 2인전 -스페이스 모빈(한국)-
09년 Pilmuk & Photo -Mulpa Space(한국)-
09년 2009 서울미술관 포토 페스티벌 사진의 순환전 -서울미술관(한국)-
09년 한국현대작가전 -오오사카예술대학 예술정보센터 전시홀(일본)-
11년 화려한 심장 -을지미디어갤러리-
13년 white summer -롯데백화점갤러리 대전점-
14년 Contemporary art ruhr Media Art Fair – World Heritage Site, Zollverein,
     Essen, Germany
14년 예술가의 선물전 –GALLERY SEIN-
15년 DMC아트페어 -디지털미디어시티 갤러리-
16년 내방에 빛을 걸다 –스페이스 옵트-
18년 골목전–남산 –남산갤러리 외 다수의 단체전참여

Team Project activities [인천문화재단기금]
16년 2016인천여자 –선광미술관-
17년 인천여자 Just as you are  -인천아트플랫폼 칠통마당-

경력
07-12년 대구예술대학교 사진학과 강사
08-09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강사
10-11년 서울사진클럽 지도교수
13-현재 상명대 사진영상학과 강사
10-현재 충남대학교 디자인창의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