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완전
화창한 봄 날 정상곤이 주변인들의 일상에 작품이라는 봄기운으로 활기를 불어넣고자한다.
그의 작품에 앞서 우리나라 최초 미학자인 우현(又玄) 고유섭 (高裕燮)은 조선시대 미학의 대표적인 예로 달항아리를 완전하지 않은 곡선, 부정형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어리숙하면서 무심한 선의 형태에서 ‘불완전한 완전’을 논했다. 이 부분에서 정상곤의 작품과 유사함이 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을 보면 완전하지 않으면서 약간의 부정확한 형태로 절제미를 표출하였다. 그리고 단순한 형상으로 최소화하여 구도를 잡는 표현법은 불완전의 완전을 요구하는 자기만의 형태와 구도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작업하고자하는 대상을 바라 볼 때 눈에 보이는 형상 그대로 그리는 습성이 있어 재구성하여 표현하는 것은 고뇌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작품에 담을 수 있는 부분이 고유섭이 논하는 요지와 닮은 듯하다.
또한 고유섭이 예로 든 달 항아리는 위아래 두 개의 사발을 접합하여 하나의 항아리를 만들어 몸통의 둥근 곡선과 보름달처럼 보이는 풍만함을 품은 ‘무기교의 기교’를 언급하였는데 이 또한 정상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상곤은 동서양의 특징을 살려 자신만의 눈과 직관력으로 그의 무심한 무기교와 다양한 색감으로 기교를 더하는 재미가 있어서 작품에 맛스러움을 더한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세심하게 정상곤의 색채를 살펴보면 19C 인상주의 화가들의 유영적인 물감의 붓질과 질감을 보는 듯하다. 또한 빛, 대기, 온도 등의 조건에 따른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조나 색채의 순간적인 효과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린 인상주의화가들의 표현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캔버스에 여러 번의 붓질과 나이프 질에서 완전히 혼색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색을 동시에 표현하는 기법은 색채 하나하나 어우러져 멀리서 보았을 때 병치혼합의 효과로 주변색과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색감이 보여지고 두껍게 올린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미학에서 논한 달 항아리는 우리나라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온 정상곤은 둥근달처럼 풍만한 달 항아리와 같이 주변인들의 일상에 커다란 영향력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더 많은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다.
- 화가 김대섭 -
작가의 글
정상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내면이 질풍노도의 시절이었을 청소년기의 어느 날, 무슨 연유에서인지 조잡스런 재질의 스케치북과 크레용인가(?) 크레파스를 들고 살고 있던 시골 동네와 가까운 조그만 개울과 들판이 있는 곳에 나가서 그림을 그린 경험이 있다.
희안하게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 따뜻한 손길이 나름 심각한 고민으로 가득 찬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면서 그 무언가의 충만감으로 마음의 평화가 가득 찬 순간을 맛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생활인으로서 공직생활 30년을 때로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때로는 신고의 시간 속에서 보내고 현역을 떠나있던 어느 날, 지기인 당시 예술의 전당 김장실 사장이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 강좌에 참여해 보길 권했고, 불현듯 어린 시절의 강렬했던 추억이 다시 살아나서 처음에는 수채화로 이어서 유화로 그리게 되었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더더욱 전업 작가도 아니지만, 더구나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나 같은 비전문가가 개인전을 가짐으로써 삶에 지친 중 장년 층의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자극이나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으로 졸작임을 알면서도 그 사이 쌓인 소품을 감히 내놓고 <불완전의 완전 >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시회의 이름을 걸게 되었다.
아들러는 '인생은 늘 <지금 여기 Now & Here>에서 완결되어 있다'고 했다.
<지금 여기>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다면 젊은 나이에 죽든, 백수까지 장수하든 어떤 찰나도 심지어는 죽는 순간도 늘 완결된 인생이라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며 몰입(Flow)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 >에 깨어 있게 하는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몰입해서 그리는 순간에는 용광로처럼 뜨겁고 원초적인 거친 내면의 열정도 순화되어서 캔버스에 옮겨진다고 느낀다.
내 삶에 있어서 남은 시간들을 음악과 미술이라는 예술을 향유하며 영혼의 자유가 충만하게 살고 싶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