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의도
《사진가 구보 씨의 ‘경이의 방’》은 사진아카이브연구소에 소장된 사진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아카이브 기반의 기획 전시이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경이의 방’(Wunderkammer)‘은 15~18세기 유럽에 수집 붐이 일면서 생겨난 “진귀하고 이국적인 물건들을 수집·진열해 놓은 사적 수장고(작은 서재, 진열실)”를 지칭하며,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ies)’이라고도 불렸다. 근대 유럽인들의 ‘경이의 방’에는 실제 사물들이 아카이빙 되었다면, 사진술 발명 이후의 ‘경이의 방’에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촬영한 사진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사진이미지로 가득 찬 그 방의 주인공이 바로 ‘사진가 구보 씨’이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라는 이름을 빌려온 것은 사진가는 필연적으로 고현학적 방법론으로 현대와 현대인의 삶을 기록하고 해석하고 연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시각적 백과전서를 지향하는 ‘사진가 구보 씨’의 수집품을 대상으로 21세기 ‘경이의 방’이 꾸며질 예정이다.
의사이자 골동품 수집가였던 올레 보름(Ole Worm, 1588-1654)의 ‘경이의 방’
이번 전시는 ‘박정희 시대의 사진표상과 기억의 소환’이라는 주제로 ‘경이의 방’을 꾸몄다. 박정희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1960~70년대(정확히는 1961년~1979년)는 한국사진사에 있어서도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엘리트 아마추어사진가들의 등장으로 모더니즘 사진이 모색되었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사진부가 신설되어 사진이 예술로 공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사진과가 설치되어 사진의 전문화 과정을 밟았던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이번 전시가 사진계를 중심으로 한 예술제도 안에서의 사진적 실천을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제도 밖에서 생산된 사진 표상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살아왔거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개별 주체들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하고자 한다. 소환된 기억은 그것이 추억이든 반감이든 또는 이질적이고 낯선 공간처럼 다가오든, 박정희 시대를 다기하게 분산시킴으로써 1960~70년대를 ‘하나’의 박정희 시대로만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편 박정희 시대의 사진표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반영론적인 읽기를 지양하고 사진의 작동 방식과 표상효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가령 박정희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반공’인데, 이 전시는 반공담론 자체가 아니라 반공이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대중과 만났는지 그리고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반공의 효과’에 사진이 어떻게 공모했는지 주목하고자 한다. 즉 반공에 대한 집단기억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공식기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진이 시각매체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의 박정희 시대에 대한 인문사회학계의 다양한 평가 작업과는 결이 다른 사진 매체 중심의 시각문화사의 지평을 확장시켜줄 것이다.
■ 전시 내용
아카이브 01. 정치인이 사진수정사를 만났을 때 (정치인 아카이브)
차지철(37세), 공화당, 광주·이천 지역구
김대중(46세), 신민당, 전국구
흑백사진 시대에 컬러사진을 얻기 위해 선택한 것이 사진용 안료를 이용한 채색이었다. 채색사진이란 말이 상용화되기 전에 미술사진이란 용어가 쓰였던 적도 있었다. 1900년대 초반 사진관 광고에서 많이 등장했던 이 용어는 변색과 퇴색으로 인해 사진의 수명이 길지 않았던 시절, 사진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사진기술의 하나였다. 따라서 미술사진이 가능한 사진관은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사진관과 동의어였던 것이다. 사진관 사진사들은 고객의 초상사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촬영단계나 현상단계에서 발행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정과 보정 작업을 병행해왔다. 사진사가 주로 수정과 보정 작업을 수행했지만, 전문적인 사진수정사들을 두어 전담시키기도 했다.
위의 사진은 선명사장(鮮明寫場)에서 제작한 인물사진이다. 수정한 흑백사진 위에 채색한 사진으로, 미술사진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1960~70년대 사진관(을 중심으로 한 인물사진의 시각)문화사를 엿볼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고급 사진관마다 사진수정전문가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포토샵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디지털 사진문화가 사진관을 밀어내면서 사진수정사들도 사려졌다.
이 사진의 출처는 1971년 동아공론사에서 발간한 『인물사진명감』으로, 여기에는 제7대 대통령을 비롯해서 국무위원, 제8대 국회의원 그리고 실업계의 단체장과 금융계의 은행장(長)들의 프로필사진이 실려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국회의원 사진들을 중심으로 정치인 아카이브를 구성했다. 여기서 촬영된 대상은 정치인이지만 그 정치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정치인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어떠했는지와 같은 정치담론을 반영론적으로 읽어내기보다는, 사진의 재현방식과 사진문화사를 위한 텍스트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 정치인 아카이브는 1968년 동지문화사에서 제작한 <한국지형지세조감지도>와 함께 구성되었는데, 이 조감도는 사진과 지도를 통해 국회의원(지역구 및 전국구)들의 지역별 분포를 한 눈에 보여준다. 전체적인 정치적 지형을 살펴볼 수 있는 지도 위에 사진이 갖는 즉각성과 신속성이 보태져,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새 시대를 예고한다. 그것이 상호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이라는 점만 빼면 근대성의 일상화가 빠르게 진전되었다.
아카이브 02. [간첩의 추억 1] 별이 빛나는 밤에, 간첩과 라디오 (라디오아카이브)
라디오아카이브-애플 라디오/ 내셔널 파나소닉 라디오/ 금성 라디오/ 소니 라디오(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누구에게나 ‘라디오’하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지금은 TV나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에 밀려 그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라디오를 통해 즐겨 듣던 방송프로그램과 그 진행자를 아직도 기억하는 일반 청취자들이 여전히 옛 추억을 전하기도 한다. 한때 라디오는 중산층의 지표이자 중요 재산 목록 중의 하나였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에서 욕망의 대상이 되어간 라디오는 시인 김수영이 <금성라디오>(1966)라는 시에서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五백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고 고백했듯이, 1960년대 들어와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갔다. 하지만 라디오의 일상화는 모든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근대적 인식의 균질화 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라디오와 확성정치”(마셜 맥루한)의 효과를 일찍이 발견한 이승만 정권은 앰프촌 건설을 통해 균질화된 국민 만들기에 나섰으며, 이는 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보태 1962년에는 ‘농촌라디오보내기운동’까지 전개되었다. 1961년 금성사에서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라디오 개발에 성공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69년 3월 17일 청소년을 위한 심야토크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별이 빛나는 밤에’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최장수 라디오프로그램이다. 1969년은 이수근이중간첩사건(1월)을 시작으로 주문진무장간첩사건(3월), 유럽간첩단사건(5월), 흑산도무장간첩침투사건(6월) 등 수많은 간첩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에서는 간첩활동에 사용된 증거품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무전기를 비롯하여 공작금, 암호문, 난수표, 불온책자, 침투복, 위장복, 권총, 무전기, 나침반, 독약, 위조주민등록증, 시계, 카메라, 수신용 라디오 등 간첩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물품들이 등장한다. 이 물품 중에서 간첩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증거품 이 ‘라디오’였다. 1960~70년대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북한방송을 듣다 잡혀간 일반 청취자들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던 시대였으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외어야했던 10가지 ‘간첩식별법’ 중 ‘한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북한방송을 청취하는 자’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라디오’는 간첩의 지표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간첩 증거품 사진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떼어내어 아카이빙 했다. 이 라디오아카이브를 제조회사별로 분류하여 구성했는데, 간첩들이 가장 선호한 라디오는 당시 한국보다 기술력이 앞섰던 일본 제품들(소니, 내셔널 파나소닉, 샤프 등)이었으며, 그 중에서 소니 제품이 단연 앞섰다. 국내 제품으로는 1959년 국내 최초로 진공관 라디오 개발에 성공하고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한 금성라디오가 그 뒤를 이었다. 궁극적으로 이 작업을 통해 라디오를 수신하는 다양한 청취 주체와 시대적 표상으로서의 라디오, 그리고 그 사이의 다양한 기억의 집합들을 소환하고자 한다.
아카이브 03. [간첩의 추억 2] 중정(中情)식 분류법 (증거품아카이브)
중정식 분류법 2 (간첩 증거품사진)
<중정식 분류법>(증거품아카이브)은 <별이 빛나는 밤에, 간첩과 라디오>(라디오아카이브)와 짝을 이루는 아카이브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후자의 이미지는 전자의 사진에서 따온 것이다. 따라서 ‘라디오아카이브’와 ‘증거품아카이브’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재프레임과 프레임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현대사에서 특히 박정희 시대의 가장 불편한 주제이기도 한 ‘간첩’ 이야기를 현대미술의 방법론을 빌려 ‘간첩’이 당시 그리고 오늘날 어떤 수사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정식분류법 1 (간첩 증거품사진) 중정식 분류법 2 (간첩 증거품사진)
흥미로운 것은 이 증거품사진이 ‘증명’에 관한 이중투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진은 대상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존재증명의 도구가 되었고, 이로부터 증거능력을 획득했다. 반면 간첩의 소지품은 그것을 소지한 인물이 간첩임을 증명한다(고 제시되었다). 따라서 증거품사진 간첩임을 증명하는 증거품을 다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증명에 대한 이중투사이다. 그런데 간첩사건 중에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적지 않은 간첩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경우 증거품은 간첩의 표상을 위해 동원된 조작품이 되며, 외려 증거물의 소지자가 간첩이 아님을 증명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증거품사진은 본연의 존재증명을 포기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증거품아카이브>는 메타비평을 위한 텍스트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반공의 일상, 일상의 반공’ (반공아카이브), ‘동상의 시대, 기념의 시대’ (동상사진아카이브), ‘새것 콤플렉스’ (새new-아카이브), ‘새농민-표상, 새농민표-상’ (새농민아카이브), ‘농촌표준주택 평형별 모델하우스’ (새마을주택아카이브)와 동영상으로 구성한 ‘테이프 커팅과 새마을 가꾸기’ (근대화 아카이브) 등 모두 9개의 아카이브로 ‘경이의 방’이 꾸며진다. 배경에 보이는 동상은 진해에 있는 이순신동상으로 조각가 윤효중이 1952년 제작했다.
* 주제별 사진이미지 첨부(아래)
아카이브 04. [간첩의 추억 3] 반공의 일상, 일상의 반공 (반공아카이브)
보은농업고등학교 훈련부 일동, 1962
교사(校舍) 입구에 ‘간접침략을 분쇄하자’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아카이브 05. 동상의 시대, 기념의 시대 (동상사진아카이브)
제5중대 제9소대 단체 기념사진, 1964
배경에 보이는 동상은 진해에 있는 이순신동상으로 조각가 윤효중이 1952년 제작했다.
아카이브 06. ‘새’것 콤플렉스(새(new)-아카이브)
<새무용>(LP판 재킷 표지), 1972 재킷 표지에 마스게임 및 새마을무용을 창작한 ‘파조’선생의 초상사진을 수록했다.
아카이브 07. 새농민-표상, 새농민표-상(새농민아카이브)아카이브
『새농민』 1968년 8월호 표지(모델 김영옥) 『새농민』 1968년 10월호 표지(모델 홍세미)
아카이브 08. 농촌표준주택 평형별 모델하우스 (새마을주택아카이브)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제촌마을의 새마을주택, 1977아카이브
농촌표준주택설계도(15평 가형) 농촌표준주택설계도(15평 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