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시간 1 : 디지털. 빈티지. 에이아이 (Time of Photo 1- Digital, Vintage, AI)>
2026.08.19 ~ 2026.09.07
강홍구

대량의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은폐되어 버린 시대. 시각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디지털 사진의 태동기부터 현재의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진 매체의 변화와 그 이면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색해 온 

강 홍구 작가의 개인전 <사진의 시간: 디지털, 빈티지, 에이아이(Time of Photo - Digital, Vintage, AI)>가 사진 전문 전시 공간 스페이스 22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사진이 가진 기계적 중립성과 복제성, 기록성이라는 전통적 특성이 디지털과 생성형 AI라는 기술적 전환을 맞이하며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변치 않는 예술의 가치는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

 

#### **■ 1992년 용산 전자상가에서 시작된 여정… ‘B급 작가의 쉽고 두터운 예술 세계**

 

강홍구 작가가 컴퓨터를 구입해 디지털 사진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2, 인텔 i486DX2-50 기종을 용산 전자상가에서 주문 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작가에게 컴퓨터로 만든 사진은 그저 수많은 시각 매체 중 하나였으며, 사진의 본질 자체보다는 이미지를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작가는 스스로를 이미지의 창조자라기보다는 이미지 검색자혹은 분석가로 정의하며, 영화 스틸컷, 잡지, 광고 사진 등을 차용하고 조작해 일상 속에 감춰진 공포와 욕망, 속물성을 폭로해 왔다.

 

기법은 쉽고 간명하게, 의미는 되도록 두텁게라는 명확한 원칙 아래 , 작가는 1999년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며 스스로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B급 작가라 명명했다

거창한 재능에 기대어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매체를 통해 쏟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예술가적 솔직함과 실천적 태도의 발로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가의 허구성을 꼬집은 <해수욕장>을 비롯해 <나는 누구인가>, <행복한 우리집>, <전쟁공포> 등 한국 디지털 사진의 초기 연작들을 대거 선보인다.

 

#### **■ 디지털 사진이 빈티지가 되다시간의 열화가 만든 아이러니**

 

전시의 핵심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디지털 사진의 빈티지화라는 역설이다

1990년대 후반, 대형 프린터가 없던 시절에 레이저 흑백 프린터로 여러 장을 출력해 이어 붙이고 아크릴 바니쉬를 발라 완성한 <세한도><고사관수도> , 

그리고 디지털 파일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변환해 확대 인화했던 <무명열사의 묘> 등의 초기작들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의 제한된 기술로 인해 화질이 거칠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미지가 서서히 사라지는 열화 과정을 겪은 이 디지털 출력물들은 이제 세상에 단 한 장만 존재하는 빈티지 프린트가 되었다

작가는 아날로그 사진처럼 나이 들어가는 디지털 사진을 통해, 복제가 본질인 디지털 매체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아날로그적 유일성을 획득하는 아이러니를 시각화한다.

 

#### **■ 박물관의 국보와 생성형 AI의 만남인간의 신체성에 대한 질문**

 

전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최근 문화 예술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생성형 AI 영역으로 확장된다

포토샵의 생성형 AI 기능을 활용한 작가의 신작들은 일상의 파편적인 순간 위에 박물관의 국보급 도자기를 현실적 배경과 합성하는 시험적 시도들이다

과거에는 그저 일상적 도구였으나 지금은 고미술품이 된 도자기를 현재의 현실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가치와 공간의 재배열을 시도한다.

 

동시에 작가는 AI가 만든 이미지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을 견지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빌려 디지털 정보란 결국 신화화된 비틀린 계몽의 숫자들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 AI 이미지가 가진 독자성과 개별성의 부재(클리셰이자 키치)를 꼬집는다.

 

작가가 말하는 인간 미술가와 AI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신체를 통한 감각과 구체화’, 그리고 늙음과 죽음이라는 유한성에 있다

인간은 죽음이 있기에 고유한 체험과 감각의 생생함을 가지지만, AI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숫자의 배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이 발전해 작가의 취향을 반영해 영생하며 작품을 생산하는 AI 작가가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미래적 상상 또한 흥미롭게 제안한다.

 

#### **■ “작업을 한다는 것은 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

 

이번 전시는 개인적 관점에서 디지털 사진의 역사적 변화를 조망하는 동시에 기술 격변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진 이미지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이 전시에 명쾌한 답은 없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테크놀로지가 예술을 삼킬 듯 진화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예술가의 눈과 신체성이 왜 여전히 중요한지 확인하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