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원의 작업 노트
“사람이라는 또 다른 세계의 탐험”
동물 사진은, 꾸준히 한 방향을 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돼지 나라, 말 나라, 젖소 나라다.
돼지 사진은 돼지나라 여행기다. 시간과 인내의 싸움이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사람 사진은 어렵다. 60년 이상 사귄 친구인데도 모른다.
사진 보다 대화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이야기를 나누다 엉엉 울기도 했다.
버린 사진이 더 많다. K가 췌장암 선고를 받고 입원을 앞두고 가족 캠프를 갔다. 손주까지 11명이다.
가족사진을 찍었다. 모두 환히 웃으라고 했다. 웃고 있지만 웃는 얼굴이 아니다.
웃음 뒤에 아련한 슬픔, 두려움이 있다. 80대 S는 천진난만하다.
한여름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아무데서나 벌러덩 눕는다.
당구장의 나른한 표정이 재미있다. 당구장은 남성 노인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놀이터다.
L과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과 함께, 공원에서의 대화, 집에서 출발해 2시간 30분 걸려 교회에 가는 길,
그가 말한 통곡의 계단도 의미 깊었다. 모두 탈락이다.
80대는 미련하다. 세 명이 다 환자다. 췌장암, 족저근막염, 뇌경색을 앓고 있다.
병원 치료 대신 모두 자가 치료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은 자기가 만든다.
세 사람 모두 글을 쓴다. K는 일기를, S는 산에 다니며 시를 쓴다. L은 월요 기도문을 보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나라 역사다.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몰라 아주 작은 일부분만 꺼낸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만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