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회상 Mneme in Gunsan>
2015.03.18 ~ 2015.03.28
황인화

■ 전시 개요

• 전시명 : 황인화 개인전, <군산회상 Mneme in Gunsan>
• 전시기간 : 2015년 3월 18일 (수) ~ 2015년 3월 28일(토)
• 전시오프닝  : 2015년 3월 18일(수) 6~8pm
• 관람시간 : 월~토 11:00~19:00 |공휴일 휴관

 

■ 전시 기획 의도

므네모시네의 거울, <군산회상>

 기억의 창고는 어디에 있을까. 아니, 악보와 문자와 사진이 없었던 때에 기억은 어느 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무엇을 통하여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봄을 앞두고 우윳빛 온기로 가득한 서해안 고속도로 위에서 생각들이 무성해진다. 길 가의 나무들은 꿈틀거리는 안개 속으로 뿌옇게 멀어지고, 간혹 빗방울들이 차창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길 위에서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는 기억을 다독였을 것이고 누군가는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가누지 못해 연신 여닫음을 반복했을 것이다. 꼭 20년 만의 군산 행은 기억의 지도를 더듬게 한다. 기억에도 지도가 있다면 분명하나의 좌표에서 시작될 것이다. 특정한 장소, 혹은 나이, 아니면 색감이나 촉감 같은 것을 기점으로 그 옆의 사람, 그 뒤의 사건, 전면에 펼쳐지는 풍경으로 이어지다 막다른 곳에서 발견하는 나도 몰랐던 나의 흔적들. 두렵고 기이한 것은 그 흔적을 마주할 때이다.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 기억이고 흔적이 아니던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추방되었던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고 망각한다는 것은 기억을 삭제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잊고 있었던 것들의 거주지이고, 열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판도라상자이다. 그것은 또한 보고 싶은 것들만 가두는 프레임이고 봐왔던 것들이 안주하는 밝은 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쓰여 지지 않았고 찍혀 지지 않았는데도 어딘가에서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형체도 깊이도 알 길 없는 캄캄한 우물 속에서 숨 쉬고 있던 나도 몰랐던 나의 애기(愛氣)! 유년의 기억은 시간의 거리상 가장 멀리 있지만, 가장 내밀한 나의 몸속에서 삶의 위기의 순간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사랑의 통증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으나, 분명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던 기억의 희미한 처소를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쓸쓸한 일이다. 그 쓸쓸함의 정체가 한 몸으로 꿈틀거리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동형체임을 알았을 때, 시간은 이미 회상의 거리에 놓인다. 늘 그렇게, 나중에야, 알았다.

사진 책과 전시로 엮어진 황인화의 <군산회상 Mnemo in Gunsan>은 영화 속에서 떼어낸 정지화면처럼 말끔하게 펼쳐진다. 책과 전시 모두 깨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는 여정으로, 여기저기로 이어지는 군산의 조붓한 골목길처럼 회상은 좀체 끊어질 것 같지 않다. <군산회상>에서 작가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주변의 인물들과 사건, 배경 등은 매년 월명공원에서 열렸다던 사생대회에서 그녀의 도화지로 옮겨 온 파랗거나 푸른 그림 같다. 현실의 색깔과 기억의 색은 ‘파랗거나 푸른 듯’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그 땐 운동장처럼 넓었던 신작로가 지금 와 보니 차량 두 대가 겨우 비껴갈 정도로 좁다. 엄마가 입었던 한복의 색깔이 분명히 하얀색이었는데 다시 보니 벚꽃 분홍빛이었듯이. ‘2011년 1월 1일 늦은 오후 엄마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면서 시작되는 <군산회상>은 그동안 작가로부터 분리되었던 기억의 파편들을 수집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일견 산만해 보이고 맥락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도 작가의 노트와 함께 보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기억으로 맞춰지기도 한다. 그/녀의 기억인데 사진을 통해서 나의 기억이 되다니. 가령 숙제를 빠뜨린 날 교실 밖으로 쫓겨나 작가가 올랐다던 ‘월명산’은 이름은 다르지만 나의 뒷동산이었을 것이고, 친구의 집 담장에 핀 능소화의 주홍빛은 내 기억 속에도 뜨거운 여름의 전형이었다. ‘초록빛 바다’ 또한 나의 애창곡이고, 엄마를 따라가던 시장 통은 가장 즐거운 놀이터였다. 유년의 엄마의 자리는 언제나 ‘어느 화창한 봄날’로 정해졌다. 화창한 운동회, 화창한 소풍날 등 부드럽고 따뜻하고 동그랗고 포근한 빵처럼. 그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터지는 앙꼬 같은 엄마라는 이름은 언제나 오감을 발동시키며 공감각적으로 떠오른다. 그 엄마가 돌아가신 날의 기억은 작가에게 ‘소리 없이’ 찾아왔다. 엄마와 함께 누볐던 거리는 그날따라 ‘텅 비고 시간은 멎고 모든 소리는 햇빛 속으로 증발해 버렸다.’ 우리는 모두 집을 떨어져 나와 서울로 올라왔고 군산에서 서울까지, 혹은 전주에서 서울까지의 긴 공백은 무겁거나 가볍게 단단하거나 허술한 채로 계속 묶여있었다.

엄마와 함께 찍은 낡은 흑백 사진으로 시작되는 <군사회상>사진첩은 밝고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런 봄날의 벚꽃 잎처럼 가볍고, 여름날의 능소화처럼 질긴 이야기-사진이 <군산회상>이다. 이 책은 오래 된 정원, 빛바랜 간판, 금방이라도 먼지가 일어날 것 같은 소파와 테이블, 비스듬하게 누운 길, 쓰러져가는 담장 등 매우 느리고 모호한 진행과 암시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떤 이미지는 섬광과도 같은 순간이 포착돼 있거나, 순간과 순간 사이의 침묵과 단절의 틈도 보여 진다. 그런가하면 4~50년이 퇴적됐을 법한 건물들이 수평과 수직으로 한데 어울려있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이 시간의 선분으로 누워 있다. 꽃무늬 화려한 몸빼들이 장미 넝쿨처럼 휘감긴 시장 통엔 어설프게 널어놓은 빨래와 생선의 비린내, 정갈해진 적산가옥이 생생한 현재로 살아 있다. 불명료함과 낯섦이 매혹적으로 교차하며 찢어진 사진을 이어 붙인 듯한 이 조화로움. 이것이 삶의 자리를 성실하게 바라보며 찍어 낸 황인화작가의 시선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러니 보고 나면 내 주변이 자꾸만 오버랩 되는 이 사진 책-전시는 지나간 시간들 전체를 들어 올리며 먼 곳을 계속 바라보게 할 뿐이다.

기억과 망각이 무덤처럼 한 데 있는 사진은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불러 온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진의 본질을 죽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이미지이지만 지금은 부재하는 것이기에. 어머니의 무덤에서 시작되어 삶의 공간과 박물관의 시간이 혼재한 군산의 이미지로 마감된 이 사진집에서, 작가는 사건의 서술이 아니라 이미지로 환기시키며 배제될 수 있을 기억의 시간들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고대 도시 델포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리바디아’에는 망각을 상징하는 ‘레테Lethe’의 샘물과 기억을 상징하는 ‘므네모시네Mnemosyne’의 샘물이 동시에 흐른다고 한다.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하늘의 신 ‘제우스’ 사이에 아홉 자매가 태어나는 데 바로 ‘무사이Mousai’이고, 이들이 사는 집이 무사이온(Mousaion, 영어로 ‘뮤즈 Muse’, 지금의 ‘뮤지움Museum’)이라고 하니, 음악과 예술, 기억의 기원인 ‘므네모시네’를 작품집의 타이틀로 채택한 작가의 의도는 사뭇 의미심장하다. 기억의 산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면, 지금 군산은 스스로 박물관이 되려는 듯 선택된 기억과 배제된 기록사이에서 혼돈의 국면에 처한 듯하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사진이 그러하듯 작가는 이 도시에 되도록 느린 걸음과 호흡으로 다가가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공간의 얽힘을 풀어내고 있다. 유년의 기억들이 대개 비슷하듯이 채집한 사진들의 형식 또한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내륙의 금강과 서해안이 만나듯, 기억과 망각이 사진의 밑에서 울려오는 여운은 그윽하고 길고 깊다. 므네모시네의 거울에 비친 이 도시의 빛과 그림자들이 특별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 최연하 SPACE22큐레이터)


■ 전시 서문

 황인화 사진전 <군산회상>에 부처 

                       슬프면서도 웃을 듯 빛나다

                                                                                           글: 유헌식(단국대 철학과 교수, 문예비평가)

1. 엄마의 군산에서 자기 보기

 ‘엄마가 죽었다.’ 어린 소녀의 눈앞이 온통 하얗고 까매졌다. 한 여름 태양의 열기에도 몸은 대지에 얼어붙어 감각을 잃었다. 그 후 오랫동안 군산의 고향집에서 마음을 돌리고 지냈지만, ‘군산’은 어느새 항상 등에 얹혀 있었다. 황인화의 <군산 회상> 사진작업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군산’과 관련된 개인의 기억을 토대로 2년여에 걸쳐 촬영한 다큐 성격의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한 편으로 군산에 대한 개인사적인 시선으로 인해 주관적일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선택적인 시선으로 인해 오늘날 군산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이루는 측면들이 객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나 장소가 있는 법이지만,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상처와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처럼 상처의 치유는 일정 기간 그에 상응하는 물리적인 고통을 요구한다. 엄마 상실의 상흔은 지난 세월 속에 묻혔겠지만, 사진작가 황인화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실질적으로 마주할 용기를 갖추었다.

자기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자기 밖으로 나가야 한다. 더구나 ‘사진’으로 ‘자기’를 찾고,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회화의 경우 프리다 칼로처럼 자기 등 안에 박힌 철심을 섬뜩하게 그려낼 수 있으나 사진의 경우엔 자기 안의 상처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작업방식의 특성상 자기의 안의 사실을 자기 밖에서 찾는다. 헤겔의 변증논리에 따르면 ‘타자 안에서 자기를 보는 일’이야말로 정신으로서의 인간이 참된 자기를 찾는 길이다. 자기의 분열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자기의 모습을 타자에 투사하여, ‘투사된 타자’를 다시 자기에게로 복귀시킴으로써 ‘자기의 긍정’에 이른다. 여기서 ‘찍는다’는 행위는 부정된 자기를 다시 자기에게로 환수하는 활동이다. ‘사진’이라는 결과적인 시각이미지와 더불어 ‘찍는 행위’ 자체도 ‘치유’ 기능을 수행한다. 찍는 순간의 대상에 대한 직관과 찍은 후의 사진에 대한 반성은 긴장감과 생생함에서 차이가 있지만 양자 모두 다른 방식으로 찍는 이의 심리적인 치유에 기여한다.

자화상 사진에서도 작가는 그 안에서 자기의 타자를 발견하려 한다. 낯선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아무런 새로운 것을 가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닌 사물이나 자연 그리고 타인을 찍을 경우 그 안에서 새로운 자기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하다. 자기 아닌 것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작업은 비단 사진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모든 예술 활동의 근간이다. 왜 자기 밖으로 나아가려 하나? 자기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핍이 없으면 자기 밖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타자를 향한 욕구는 기본적으로 자기의 결핍감에 근거한다. 나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느냐가 곧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결정한다. 황인화의 <군산회상>은 그런 점에서 자기의 상실을 보충하려는 보편적인 욕구에서 출발한다.

2. 파행(跛行) 혹은 절뚝거림

 ‘군산’은 황인화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이지만 한반도 근대사와 연루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1899년 일본에 개항(開港)한 군산은 일제의 양곡 수탈을 위한 거점으로서 근대 한반도의 비극을 온몸으로 안고 있다. 일제가 미곡 반출을 위해 건설한 군산의 항만과 도로와 철도 등이 여전히 도시의 윤곽을 결정하는 흔적으로 남아 있고, 과거 일본인이 거주하던 적산(敵産)가옥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보존을 서두르고 있기도 하다. 군산 옆 임피(臨陂) 출신인 작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의 군산은 일본인 중심의 번화가와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로 거주 구역이 확연히 구분되었고 그 흔적은 아직도 군산의 풍경으로 어지럽게 남아 있다. 용도를 다한 철길은 방치된 지 오래고, 무계획적으로 보수 증축한 건물들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군산은 장항제련소를 발치에서 바라보며 금강 하구의 생활에 숱한 사연을 만들어 냈다. 대부분의 풍경은 비스듬하고, 그 속에 살았던 황인화의 눈에 비친 삶의 모습도 기울어져 있다. 그의 사진에 비친 군산의 현재는 단지 ‘군산’에만 국한된 현실이 아니다.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가 그 안에 단적이고 다각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황인화의 대담한 조형감과 섬세한 직관력을 통해 한반도가 잊어서는 안 될 도시의 한 구석이 클로즈업되고 있다.

황인화에게 군산은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포착되었을까? 그의 사진은 전체적으로 회색빛을 띠고 있다. ‘회색빛’은 중간 톤이라는 메타포로서 아련함과 흐림과 기울음과 흔들림 그리고 겹침 등 삶의 비스듬한 실상을 암시한다. 사진을 그룹으로 나누어 붙인 소제목들을 따라가 보자. ‘영원한 그리움’에서는 우측 하단의 선명한 꽃을 배경으로 엄마 산소가 아련히 자리 잡고 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갔을까’는 텅 빈 운동장의 새들과 놀이기구를 무심하게 그리고 있는가 하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허물어진 집터 사이로 지난 삶의 자그마한 빛들이 남아 있다. ‘삶은 비스듬하다’에서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휜 몸을 이끌며 철길을 걷고 있으며, ‘고독의 무게’에서는 대로에 노인들이 말없이 서로에게 엇갈린 시선을 보내고 있고, ‘소리 없는 기억’은 텅 빈 도로에 인적이 드문 가게들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탁류’에서는 철거되고 있는 집들이 중심을 잃은 채 제멋대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사이로 유유히 금강이 흐른다. 삶은 비스듬하게 진행된다. 더구나 군산처럼 일제 강점기를 몸소 겪은 소도시는 아직도 곳곳에 절뚝거리는 파행(跛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협화의 기류가 곳곳에 흐른다.

3. 산문(散文)으로서의 사진

 본다는 것은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봄의 질서를 통하여 대상은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사진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하여 ‘바라본다는 것의 윤리’를 가르친다고 수전 손택은 말하지만 ‘윤리’는 사실 개인의 취향이나 타인의 기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황인화의 <군산 회상>만 해도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심에 따른 시선의 결과물이다. 소제목들은 감상자가 사진의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보아야 할지를 암시한다. 소제목에 포함된 ‘그리움’, ‘나’, ‘친구’, ‘시간’, ‘봄(春)’, ‘비스듬하다’, ‘고독’, ‘기억’, ‘탁류’, ‘새로운 시대’ 등에는 황인화 개인의 경험과 인간의 실상과 군산의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나는 타인과 동행하며, 우리는 역사와 동행한다. 어떤 타인, 어떤 역사와 동행했느냐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준다.

사진이 종종 한 편의 시(詩)에 비유되는 것은 하나의 ‘컷’으로서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작업에서는 이미지를 ‘넣기’보다 ‘빼기’가 관건이 된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라는 경제원리가 사진에서도 통용된다. 최소의 절제된 이미지로 자기완결적인 결과를 낳을 때 좋은 작품으로 평가한다. 압축의 정도가 강할수록 추상성을 띠고 시(詩)적이어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메시지의 핵심을 부각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의 이러한 원칙적인 지침과 달리 황인화의 사진은 산문(散文)적이다. ‘빼기’보다는 ‘넣기’에 몰두한다. 깔끔한 이미지를 위해 어수선한 요소들을 피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잡다(雜多)한 것이 그대로 들어오게 한다. 그것들이 서로 엉켜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더구나 군산처럼 한 때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뒤로 하고 있는 도시의 경우 건물의 행색은 말할 나위 없고 거리의 간판이나 사물의 표정에 이르기까지 빛바랜 과거의 성쇠(盛衰)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풍경의 이미지들은 복잡하고 착잡(錯雜)하다. 하나의 공간적 표지(標識)에 다양한 시간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이 표지는 행인들과 어울려 복합적이고 을씨년스러운 이미지와 이야기를 연출한다. 어떠한 치장도 거부하고 사태를 날 것으로 보여주는 황인화의 사진에서 리얼리즘적 다큐 사진의 전범(典範)을 만나게 된다.

4. 콘텍스트를 텍스트로

 사진작가는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확인한 다음에 뷰파인더로 촬영범위를 정한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장면을 작가는 다시 뷰파인더를 통해 선택한다. 작가의 최초 시선에 포착된 장면과 뷰파인더로 선택한 장면은 엄밀히 말하면 동일하지 않다. 작가적 시선의 전체적이고 맥락적인 봄(視)을 뷰파인더의 한정된 틀에 가두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어디에서 자를 것인가는 그래서 항상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황인화의 사진에도 이러한 망설임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는 결단이 빠르다. 핵심이 아니라 최초의 느낌을 담은 그 언저리만 담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하나의 완결된 질서’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완결성’이 작품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그는 이 기준을 무시한다. 하르트만이 말하듯이 ‘액자’라는 틀 혹은 경계를 통하여 작품은 ‘현실’과 구별되는 ‘자기완결적인 가상’의 위치를 확보하지만, 황인화의 사진은 이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 밖으로 나아가 이미지가 연장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거리낌이 없고 자유롭다. 멋 부리지 않아 이미지가 거칠게 보이기도 한다. 작품의 자기완결성은 가감(加減)이 불필요한 상태에서 가능하지만, 황인화는 이러한 규칙에 연연하지 않고 이미지가 밖으로 흐르기를 바란다. 황인화의 사진이 산문적이고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이유이다. 그의 <군산회상>은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담은 리얼리즘 사진을 지향한다.

최초의 시선과 뷰파인더의 시선 사이에서 작가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최초의 시선은 사실 뷰파인더의 시선보다 모호하다. 그런데도 사진은 시선보다 더 많은 것을 담는다. 작가의 눈이 보지 못한 것을 카메라는 보기 때문이다. 기계와 기술은 사람보다 정직하다. 촬영 후 ‘여기에 이런 것도 있었네!’라고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사진 만이 가진 묘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사진’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부지불식간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만 찍을 수는 없다.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끼어드는 우연적인 상황을 필연으로 전환하는 일이야말로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불가결한 덕목이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상을 인간의 눈은 텍스트로 바라보지만 카메라는 콘텍스트로 포착한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라는 사진의 과제는 그래서 카메라가 포착한 콘텍스트를 어떻게 인간에게 단일한 의미체인 텍스트로 탈바꿈할 것인가에 있다.

시선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의미부여’는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사실적인 뜻을 넘어 해석학적으로 대상과 인간 사이에 특별한 가치연관을 찾는 행위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결과물에 우연적인 요소가 끼어들어 콘텍스트를 형성할 때, 작가의 시선과 정신은 이 콘텍스트를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바꾸어야 한다. 작가의 시선은 질서를 찾지만 막상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대상은 질서 밖으로 나아간다. 황인화의 사진이 교과서적인 틀을 벗어나 사진 속 이미지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고 하지만 사진이 예술적인 작품성을 띠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소통 자체가 콘텍스트에 머물러서는 곤란하고 그 나름의 텍스트성을 지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황인화 사진의 특성을 말할 수 있고, 그는 콘텍스트를 텍스트로 승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현실에는 정돈되고 질서 잡힌 구조란 없다. 실재는 항상 사진가의 눈 밖의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가의 시선 안에 갇히지 않는 잉여를 포함한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띤 사진의 경우 작가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실제로는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황인화의 <군산회상>은 잡다하고 복잡한 실재를 가감 없이 과감하게 포착하면서도 하나의 텍스트를 산출한다.

5. 비스듬한 군산의 빛

 발자크는 말한다. “사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형태를 바꿀 뿐이다.” 지금의 군산은 예전의 군산이 아니다. 허물어져가고 있는 가옥들과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지역들로 군산은 어수선하다. 어린 시절 군산의 현재를 살았던 ‘황인화’에게 지금의 군산은 달라졌지만 변화하기 이전의 군산 모습이 그의 시선에 따라온다. 째보선창, 산 끊어진 데, 큰아버지네 집, 다니던 학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살고 놀던 지역의 거리와 건물들, 낯익은 명칭들이 낯선 모습으로 변해 있었지만 황인화의 기억 속에 있던 이미지들이 이제 다시 숨 쉬고 있어나 군산의 과거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철거된 가옥의 흙더미 사이로 욕조의 타일들이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의 군산 배후로 과거의 군산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움직이는 군산’의 틈새로 개인의 삶이 무상하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황인화의 시선은 과거의 자기에 머물지 않는다. 퇴색한 군산의 현재에서 미래의 꿈틀거림을 본다. 빛바랜 건물 건너편에 노란색 ‘람보르기니’가 멈춰 있고, 느리게 걷고 있는 인물 뒤로 ‘express’라는 간판이 들어온다. 노후된 가옥들이 포크레인과 철거공으로 정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저편에는 서서히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군산은 느리게 무너지고 느리게 세워지고 있다.

책의 통상적인 관례와 반대로, 군산의 아들 채만식의 <탁류(濁流)>는 ‘서문(序文)’으로 끝을 맺고 있다. 맺으면서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삶의 매듭은 사실 인위적일 뿐 삶의 경계를 명확히 긋기란 불가능하고 어리석다. <탁류>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그녀의 얼굴은 슬프면서도 웃을 듯 빛났다.”


■ 작가노트 + 주요 작품 이미지

<시간의 거리, digital C print, 63x42, 2014>
집 앞 시장 통에는 여전히 약국들이 많다. 신세계약국이라는 간판은 낯설다. 아, 그래. 예전엔 형제약국이었지. 약국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동화상회 막내딸인 나를 알아보았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물물다리’, ‘째보선창’, ‘산 끊어진데’. 이름은 시간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름들이 있었다. 그 이름들은 시간의 거리(距離)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시나브로 봄은 오고, digital C print, 150x100, 2013>

봄이 오는 수원지 너머로 소풍을 갔다. 나의 소풍날이 엄마한테도 소풍날이었을까. 해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따라 오셨다. 보자기에 삼층 찬합을 쌌고 머리는 고대기로 한껏 부풀린 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셨다.

<삶은 비스듬하다, digital C print, 150x100, 2014>
큰집은 구시장 철길 너머에 있었다. 아버지가 보신 신문을 매일 큰아버지께 갖다드리는 심부름을 했다. 멀쩡한 밝은 길 놓아두고 지름길이랍시고 어둡고 좁은 길로 다녔다. 여기저기 물웅덩이에 실지렁이가 가득했다. 무서웠다. 큰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부자인데도 신문 값을 아버지가 낸다고 외갓집 식구들이 흉봤다.

<고독의 무게, digital C print, 70x47, 2012>
뒷집은 제법 큰 제재소였다. 나무 켜는 소리 사이로 어른들 고함소리와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 왔다. 제재소 마당에 어둠이 내리면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사이 제재소는 주차장이 되어있었다. 주차장에 붙은 집 문간에 파란 발이 쳐져 있고 작은 TV가 방안을 비춘다. 구십이 넘으신 할머니가 홀로 앉아 있다. 주차비는 문 앞 상자에 알아서 넣고 가란다.

<소리 없는 기억, digital C print,63x42, 2014>
나는 학교에서 수업 중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여름 대낮의 해는 몹시 뜨거웠다. 경찰서 앞 큰 길이 강렬한 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는 텅 비고 시간은 멎고 모든 소리는 햇빛 속으로 증발해 버렸다.

<탁류, digital C print, 150x100, 2012>
백일장이나 사생대회는 매년 월명공원에서 열렸다. 우리는 바다와 돛단배에 대해 해마다 같은 시를 지었다. 장항제련소도 그렸다. 그런데 왜 책에서는 ‘파란하늘’ ‘푸른 물결’이라고 할까. 내가 본 강과 바다는 온통 흙탕물이고 똥색인데. 하얀 도화지 앞에서 내 마음은 복잡했다. 하늘과 바다를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할까.

<모든 시대는 다음시대를 꿈꾼다, digital C print, 150x100, 2012>
장미 상회, 장미 타이어. 장미는 꽃 이름이 아니다. 장미(藏米). 미곡 저장소라는 뜻이다. 쌀 저장소가 있는 동네라서 장미동(藏米洞)이다. 우리에게 장미(藏米)는 장미(薔薇)꽃으로 읽힌다. 일제 수탈의 역사, 세월의 두께를 뒤로 군산은 지금 변신을 시도하느라 여기저기 굴착기가 분주하다. 장미(藏米)가 장미(薔薇)를 꿈꾸고 있는가.

■ 작가약력

황인화 Hwang, Inhwa, 黃 仁 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San Francisco의 Academy of Art College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
2001 <Floating Images> (Gallery Blue, 서울)의 첫 개인전 이후, 2005 <Still Life_A Woman Waiting for a Phone Call>(Gallery Lux, 서울), 2007<New York, An Afterimage>(Yogiga Expression Gallery, 서울), 2009 Sightly International Art Festival, Takasaki City Gallery, 2015<Mnemo in Gunsan>(Space 22, 서울) 등 5회의 개인전을 갖고 한국사진학회 회원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1994년 이후 한경대학교 디자인학과에서 사진과 디자인을 강의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심상을 보편적 이미지로 승화하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