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개요
• 전시명 : 住(주) • 전시작가 : 강재훈, 김홍희, 노순택, 박종우, 박하선, 성남훈, 이재갑 • 전시기간 : 2014.12.10(수)~ 12.18(목) • 전시오프닝 : 12.10(수) 6~8pm • 관람시간 : 월~토 11:00~19:00 | 공휴일 휴관 • 작가와의 만남 : 4~6pm | SPACE22 세미나룸 12.11(목)박하선, 12.12(금)이재갑, 12.13(토)강재훈, 12.15(월)김홍희, 12.16(화)성남훈 • 전시후원 : 미진프라자(SPACE22) ■전시기획 주(住)에 관하여 기획의 글 : 이기명(리얼리티 리더스 클럽)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설을 주도한 에이브러 햄 매슬로(Abraham H. Maslow, 1908~1970)은 인간의 욕구 가운데 근본적인 것으로 '생리적 욕구'를 강조했다. '생리적인 욕구'란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식주의 해결을 말한다. 의식주는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인권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리얼리티 리더스 클럽은 3개년 기획 프로젝트로 의식주를 주제로 설정했으며, 첫해인 올해에 '주(住)에 관한 전시를 열고 사진집을 발행한다. 리얼리티 리더스 클럽이 이번 전시를 통해 지향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주'에 관한 역사서를 쓰는 것이다. 우리는 사진의 본질적 중요성을 기록성이라고 믿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사회 탐구에 주목한다. 사회, 역사, 문화, 환경, 과학 등에 관한 연구라고 덧붙일 수 있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회 제 현상의 패턴을 정의하고 원인을 설명하여 중요한 역사 기록을 보다 깊이 제공해야 한다. 강재훈('고향의 집')은 산업화에도 가장 늦게까지 변화하지 않은 농촌의 주거문화를 담았다. 초가, 한옥 그리고 한옥과 양옥이 융합되고 변화된 집은 그 지역의 오랜 전통에 연유한다. 어느 지역의 전통은 철학, 문화, 종교, 예술, 도덕 등을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인문적 환경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현 시대를 누리다가 다시 후세에 전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 한국 농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인하여 농촌은 과소화되고 있다. 강재훈은 "우리들이 나고 자란 고향집.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 노인들이 산다"라고 소회하며 떠나간 자식들이 가끔 찾아오는 고향집을 지키며 사는 노인들과 집을 정면으로 담아 유형학적으로 기록했다. 김홍희의 'Oh, Happy Day!'는 지독한 역설이다. 고리에 원자력발전소가 1978년 최초로 들어선 이후 1983년 2호기, 1985년 3호기, 1986년 4호기가 준공되었다. 이렇듯 고리는 핵발전소를 위한 천혜의 장소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곳은 주민이 바다가 보이는 전원생활을 구가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발전소는 이윤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했고 CO2를 발생시키지 않는 원자력발전소를 일견 깨끗해 보이고 온실효과도 없는 듯하다. 원전 주변의 주거환경은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불안과 불온이 느껴진다. 핵발전소와 주민의 불편한 동거! 이제 핵이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미 MIT공대 교수들이 1975년에 핵발전소가 사고 날 확률이 1/100만이라고 과학적으로 주장했지만, 이것은 실제 사고가 일어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1979년에 미국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는 단순 노무자의 실수로, 1986년에 구소련 체르노빌은 과학자의 실험 실수로, 최근 일본 후쿠시마의 4개의 원전은 인류가 예측하지 못한 자연재해로 발생했다. 전세계 450개의 원전 가운데 이미 6개의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니, 원전이 사고날 확률은 1/100만이 아니라 1/75이다. 김홍희는 "내가 살고 있는 고리는 외면과 부정 또는 긍정으로 점철된 역설의 천당"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사진에서 미래세대 역설의 지옥이 함께 보인다. 노순택의 '하늘집'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핍박받으며 내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절규로 고공에 올라 살아가는 현대 한국판 고상주거(高上住居)이다. 그는 하늘집을 통해 지금 시대에 무엇이 진정한 현장이고 무엇이 노동자와 소외받는 자의 현실인지를 보여준다. 용산 참사의 망루, 쌍용차 공장이 보이는 고압 송전탑, 35m 높이의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 울산 현대차 공장이 내려다 보이는 고압 송전탑에 오른 비정규노동자... ... . 노순택은 노동과 저항, 노동자와 빈자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눈에 띄지도 않는 평범한 이들을 촬영하여 역사에 기록한 것이다. 대상과 육친적으로 하나가 된 듯한 그의 아픈 사진은 우리 가슴에 거부할 수 없는 강물로 흘러들어온다. 박종우는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전개되고 도시로의 인구가 유입되면서 바뀌는 주거문화에 주목한다. 도시로 집중하는 공업 근로자들을 위한 공동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등이 등장했고, 생활양식의 급격한 서구화 추세가 진전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주거형태와 공간은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서울은 외부 유입인구로 인한 주택난 때문에 공동주택이 더 많이 필요했고, 대규모의 토지 확보가 어려워지자 아파트를 보다 높이 올렸다. 급격한 도시 팽창의 결과, 서울은 더욱더 거대화되고 있다. 박종우는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전통적인 주택과 거대한 고층 아파트단지를 대비시켜 집중화를 증명하고 주장한다. 서울의 과밀화의 모습은 농촌의 과소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박하선은 소수민족의 독특한 주거 형태를 보여준다. 바다의 집시라 불리는 바자우족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이 열대의 바다 위에서 살아간다. 인류 최초로 주거지가 형성된 곳은 대부분 강이나 바다 등의 주변이었다. 이는 풍족한 식량의 확보가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이나 호수위의 수상주거가 존재해 왔다. 그러나 바자우족의 수상가옥은 다르다. 뭍에서 한 평의 땅도 가질 수 없었기에 떠밀려와 바다위에 집을 지은 것이다. 그들은 국적도 없으며 언제 철거명령으로 쫓겨날지 모르는 떠돌이 신세이다. 코로와이족의 나무 위의 집은 외적과 맹수의 침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나무 위에 지은 수상주거이다. 경계형태로서 지상을 떠나 삼림지대의 나무에 지은 방어적 형식의 주거문화이다. 높은 집이란 의미의 '라마 띵기'라는 전통가옥은 높이가 무려 30m에 이른다. 박하선은 "자연 속에서 구하고 그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코로와이족들의 전통과 지혜"를 담아냄으로써 물질에 찌든 현대문명을 되돌아보게 한다. 성남훈의 '라 링코나다(La Rinconada)'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광산도시이다. 인구의 90%가 광부이며, 이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황금을 찾아 이곳으로 끊임없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수입은 한 달에 50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황금을 향한 탐욕으로 왔고 황금에 대한 미련으로 떠나지 못하는 광부들은 닭장같은 함석집에서 살고 있다. 거기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수은 중독자가 되어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주택은 사회적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체와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파생되는 환경적 요소들이 사회적 환경이다. 광산촌의 함석집은 사용자와 광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주거생활이며 주택의 형태이다. 즉,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가난한 빈민의 주거환경이다. 이재갑은 적산(enemy property)이 "우리 민족의 경제와 문화, 정신까지도 수탈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침략의 상징물"임을 강조한다. 구한말에 강압적인 한일수호조약(1876)으로 개항하게 된다. 당시 주택의 특징은 개항으로 외국문물이 상륙함으로써 주거문화가 크게 변화되었다. 개항을 계기로 개항장 주변에는 양옥과 일본식 가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일본을 통해서 여과된 양식주거가 일본식 주거와 결합하여 서구식 구조의 주택이 등장하였다. 국권피탈 후 일본식 목조건물이 주류를 이루고 일양 절충식 주택의 영향으로 콘크리트, 벽돌, 블록 등의 재료 등이 보편화되었다. 이재갑의 적산가옥 기록은 1996년 2월부터 과거 아픈 역사의 희생자들, 그 흔적이나 한(恨)에 대한 기록으로 18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적산가옥 "그 속에서 고통받고 사라져 간 사람들의 아픔과 한까지 담아보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의 사진에서 나라잃은 백성의 슬픔을 본다. 사진은 지금 스마트폰을 통해 손바닥 안에서 빠르게 공유하고 소비한다. 그야말로 그 양이 폭주하고 난무하는 시대다. 본의 아닌게 하루에 수십, 아니 수백 컷이 넘는 사진을 접하면서 과연 감동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와 같은 LTE급 시대에, 시간 내서 두 발로 느릿느릿 전시장을 거닐며 침묵으로 사진을 응시하거나 사진집을 한장 한장 차분히 넘기며 음미하는 행위와 체험은, 생각 이상으로 마음속 깊이 울림을 준다. 전시장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탄생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고요하고 신성한 '빛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직접 가보지 못한 현장의 사람들과 농밀한 대화를 나누고, 사진가의 인생과 예술혼을 만나게 된다. 이 아날로그 공감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